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노양근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 시기는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여실히 드러나던 때다. 일제의 강점으로 농토를 수탈당한 농민들은 만주 등지를 유랑하거나 도시 빈민층으로 편입되어 부실한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시국 상황은 노양근의 작품에 그대로 삼투되었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농촌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또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할 무렵, 문단은 카프가 주도하고 있었다. 당시 카프는 문학대중화론의 일환으로 농민문학에 논의를 집중하는 한편, 아동문학을 새로운 영지로 선정해 공을 기울이던 중이었다. 이런 안팎의 상황은 노양근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노양근의 동화에 나타난 특징은 심미적, 윤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그는 작품마다 웃음을 마련해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웃음은 아이들의 존재 이유고, 웃음은 놀이에서 생겨난다. 놀이는 정서의 과잉반응을 수반해 웃음을 자아낸다. 이 점에서 놀이는 비이성적이고 창조적이어서 일종의 이미지 조작, 즉 현실을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형상화 작용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거나 수용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가치와 의의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놀이는 문화의 전승과 창조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놀이는 ‘놀이하는 인간’의 원형을 담지하고 있어서 문화적 원형을 살리기에 적합한 동화와 어울린다.
둘째, 노양근은 동화의 특성을 살려 작품에 인간의 도리를 다루었다. 그의 동화 <물방아는 돌건만>은 순정이와 영감님을 등장시켜 조손간의 화해를 다루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작품의 배면에 식민자본주의의 이식으로 사라져 가는 전래의 문물을 동원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인물의 행동은 각 세대를 대변하는 동시에, 식민지 이전과 이후를 대비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의 표지이고, 민족의식의 은근한 발현이다.
셋째, 노양근은 작품마다 식민지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가 궁벽한 농촌에서 태어났고, 시골에서 교편을 잡으며 생활한 것을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설정이다. 더욱이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가 전쟁 국면을 조성하며 농산물의 수탈에 혈안이 되었던 때다. 빈농 현상은 일제의 강점 즉후부터 촉진되어 왔기에, 농민들은 시국 상황의 악화로 인해 일용할 양식조차 구하지 못해 유이민으로 전락할 정도였다. 노양근의 동화 <울지 마라 순남아>는 그 무렵의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노양근의 동화는 식민지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그대로 수용한다. 등장하는 주인공들 역시 순박하고 공동체적 소양을 내면화하고 있어서, 그의 동화 속 소년들은 환경적 요인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래의 도덕률에 충실히 따르고, 주변 인물들과의 대립보다는 어울림을 지향한다. 그런 성격은 서사의 진행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나는 바, 노양근의 동화에는 심각한 갈등 국면이 조성되지 않도록 기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양근이 동화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웃음을 행간에 마련한 덕분이다. 그는 주권을 빼앗긴 소년들로 하여금 웃지 못할 상황에서 웃도록 만든다. 독자들이 웃고 난 뒤에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요인이다. 그 배경에 식민지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는 줄 알게 될 즈음, 작가는 전언을 남기고 떠나간다. 이런 점이 그의 동화를 가리켜 1930년대의 아동문단이 거둔 탁월한 성과라고 평가하는 근거다.
200자평
노양근은 카프가 문단을 주도하던 1930∼194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다. 웃음을 적재적소 행간에 활용하고, 동화의 특성을 살려 인간의 도리를 다루며, 식민지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을 작품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눈 오는 날> 외 15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노양근은 본명 외에 ‘노천아(盧川兒)·양아(良兒)·철연이’ 등의 여러 필명을 사용했다.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 명성리에서 태어나 개성의 송도고보를 졸업했다. 그 뒤에 금천, 개성, 철원 등지의 보통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며 와세다 대학의 통신강의를 수강했다. 1925년 3월 ≪동아일보≫에 시 <거짓 말슴>이 선외작으로 뽑힌 것을 시작으로, 1930년 1월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말의 전설 부문에 <의마>를 응모해 당선, 193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요 <단풍>이 가작으로 뽑힌 동시에 동화 <의좋은 동무>가 2등 당선되었다. 또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눈 오는 날>은 가작으로 선정되었으며, 1935년 같은 신문의 신춘문예에 동화 <참새와 구렝이>가 선외가작으로 뽑혔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날아다니는 사람>을 응모해 당선되었고, 1937년에는 ≪매일신보≫의 신년현상문예에 동요 <학교길>을 응모해 병에 당선되었다.
엮은이
최명표는 196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시를 전공해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계간 ≪문예연구≫와 계간 ≪아동문학평론≫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간 지은 책으로는 이론서 ≪전북 지역 시문학 연구≫, ≪전북 지역 아동문학 연구≫, ≪한국 근대 소년소설 작가론≫, ≪해방기 시문학 연구≫, 평론집 ≪균형감각의 비평≫, ≪아동문학의 옛길과 새길 사이에서≫, 편서 ≪김창술 시전집≫, ≪김해강 시전집≫, ≪이익상 문학전집 Ⅰ∼Ⅳ≫, ≪유엽 문학전집 Ⅰ∼Ⅴ≫, ≪전북 문학 자료집≫ 등이 있다.
차례
눈 오는 날
참새와 구렝이
날아다니는 사람
파랑새 이야기
비 오는 날
황금마차
황소와 거미
울지 안는 대장
고까짓 것
배뚱뚱이
우는 대장
물방아는 돌건만
애기 물장수
네발자전거
꼬부랑 오이
울지 마라 순남아
해설
노양근은
최명표는
책속으로
귀득이는 멋적어서 머언히 바라보고 섯다가
“시? 고까짓 거! 난 우리 집이 가서 포두 먹겟다.”
한마디 불숙하고 휙 도라섭니다.
만돌이 들어 보란 소립니다.
하지만 만돌이도 지지 안코 중얼거립니다.
“포두? 고까짓 거! 난 우리 아버지가 인제 또 과자 사다 준댓는데?”
“무어야 너이가 무슨 과자야?”
귀득이는 열이 벌컥 나서 다시 휙 돌아섯습니다. 그러나 귀득이는 그전에 늘 지가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와서 만돌이에게 자랑만 하고 혼자 먹은 것을 생각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아까보다두 더 큰 소리로 말합니다.
“과자? 고까짓 거? 그럼 우린 요담 공일날 화신식당 가서 점심 먹는다나?”
“애? 고까짓 거!”
만돌이는 이러케 큰소리는 해 놧으나 그 아래 말을 무슨 말을 해야 귀득이 말을 이길가? 하고 생각하다가
“너이 집이 인력거 잇어?”
장한 듯이 말합니다. 만돌이 아버지는 인력거꾼입니다.
“애? 고까짓 인력거? 우리 아버진 자동차만 늘 타고 다니는데?”
“시! 그까짓 자동차? 우리 아버진 마라송 선순데?”
이번에는 귀득이가 말문이 매켜서 쩔쩔 매다가 바싹 닥어스며
“고까짓 거! 너 유천(유치원)에 다녀?”
만돌이 앞에 팔을 내밀어 삿대질을 합니다. 저는 유치원에 다닌다는 자랑이지오.
만돌이는 유천 소리만 들으면 언제나 골을 벌컥 냅니다.
아니나 다를가 지금도 벌서 밸이 불뚝 일어나서
“그까짓 유천에나 다니문 제일(第一)이야 임마? 그럼 우리 뛰기 내기 해 봐?”
-<고까짓 것> 중에서